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드워드 8세 (문단 편집) === 짧았던 재위 기간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에드워드8세_즉위식.jpg|width=100%]]}}} || || [[세인트 제임스 궁전]]에서 즉위 선포식을 지켜보는 에드워드 8세.[* --사악하게 웃는-- 오른쪽은 당시 연인이었던 [[월리스 심프슨]] 부인이다.] || [[1936년]] [[1월 20일]] 아버지 [[조지 5세]]가 사망하자 영국의 국왕과 [[인도 제국]]의 황제로 즉위했다. 다음날 에드워드 8세는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세인트 제임스 궁전 안에서 자신의 즉위 선포식을 지켜봤다. 이때 옆에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당시 연인이었던 월리슨 심프슨이었다. 에드워드 8세는 즉위하자마자 민감한 정치 문제에 대한 간섭으로 해석되는 행동으로 인해 논란을 일으켰다. 사우스 웨일스의 한 마을을 방문하던 도중 실직한 광부들을 보고, "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"고 말한 것이다.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일으킬만한 발언은 아니었지만, 내각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발언이었다. 또한 중요한 보고 사항이 담겨있는 정부 문서를 [[왕비]]도 아닌 연인이었던 월리스 심프슨과 공람하는 바람에 내각으로부터 기밀 유출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. 이외에도 각종 관례를 깨는 기행을 벌였는데, 본인의 [[대관식]]을 위해 열린 대관식 위원회의 첫 회의 날 [[캔터베리 대주교]]에게 대관식을 생략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거나[* 하지만, 천년넘게 이어져온 대관식 전통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, 대관식을 예정대로 치루면서 규모는 대폭 축소하는 것으로 계획했다고 한다. 그러나 에드워드 8세가 퇴위하면서 결국 대관식은 아예 취소되었고, [[조지 6세]]는 에드워드 8세의 대관식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조지 5세와 동일하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관식을 거행했다.], 즉위를 기념해 발행된 주화의 초상화를 아버지 조지 5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했고[* 원래 즉위를 기념해 발행되는 주화는 전임 국왕과 반대 방향을 바라보도록 초상화가 새겨진다. 그래서 [[찰스 3세]]의 즉위 기념 주화가 [[엘리자베스 2세]] 시대에 발행된 주화와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.], [[버킹엄 궁전]]에서 국왕 관저 구역이 아닌 국빈들에게 제공되는 벨기에 스위트룸 구역을 자신을 관저로 사용하는 등의 행동을 해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. 한편 왕비도 아니었던 심프슨 부인과 공식 행사에 동행하기도 했는데[* 심지어 아직 배우자와 서류상으로 결혼 상태였다. 즉, 왕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유부녀와 동반해 공무를 수행한 것이다.] 1936년 8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지중해 순방애도 동행하면서 국왕이 곧 심프슨 부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. 특히 순방이 끝난 10월부터 심프슨이 배우자와 이혼 절차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결혼은 거의 기정 사실화가 되었다. 하지만 이를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아 일반 대중들은 에드워드 8세가 퇴위를 선언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